협력업체 근로자 보호 강화의 역설적 상황
“협력사 직원들의 안전을 철저히 관리하면 단체교섭 의무가 발생하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관련 법률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되는 상황입니다.”
최근 노동위원회로부터 사용자 지위를 인정받은 한 대기업 담당자의 말이다.
▶ 법 준수가 오히려 부담으로
개정된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협력업체 직원들의 안전사고 예방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한 원청 회사들이 협력사 노조와 직접 협상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노동위원회가 판단한 27건의 사례 중 92%에 해당하는 25건에서 원청의 사용자 지위가 인정되었다. 협력사 노조들이 산업안전을 핵심 협상 의제로 제시하고 있으며, 노동위원회 역시 원청의 안전 의무 이행을 주요 판단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건설업체 관련 판정에서는 원청이 안전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사실이 협력사 근로자에 대한 실질적 영향력을 인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관련 기업들은 “법규를 성실히 준수할수록 불리해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 안전관리 의무와 지배력 인정의 딜레마
이러한 모순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비롯된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원청은 협력업체 직원의 안전관리 비용을 법정 비율로 집행하고, 해당 비용이 적절히 사용되었는지 관리·감독할 책임을 진다.
원청 회사는 법에 따라 안전관리 비용을 집행하고 사용 내역을 감독했을 뿐인데, 노동위원회가 이를 협력사에 대한 실질적 영향력 행사의 증거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법 개정 이전 사례에서도 하급 법원은 “협력업체에 대한 안전 관련 지침 수립과 이행 감독이 법적 의무라 하더라도 실질적 영향력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정부는 사용자성 판정에 불복한 원청 기업의 재심 신청을 제한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협상 시작 후에도 계속되는 불확실성
협력사 노조와 협상을 시작하더라도 법적 분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된 법은 임금, 복지, 근로조건 등 사안별 협상을 허용하지만 명확한 지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을 의제로 원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낸 협력사 노조가 실제 협상 과정에서 직접 고용, 임금 인상 등 추가 의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추가 의제마다 사용자 지위와 실질적 영향력 여부를 다시 판단받아야 하므로 대규모 법적 분쟁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협력사 노조가 산업안전을 이유로 파업을 시작한 뒤 파업 목표를 확대할 경우, 이를 합법적 쟁의행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파업이 합법이라면 협력사 노조의 사업장 점거가 가능한지, 원청 기업이 다른 협력업체 직원을 대체 인력으로 투입할 수 있는지도 정해지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한 법학 교수는 “산업안전이라는 연결고리를 활용해 원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노조 전략에 비해 사업주의 대응 전략은 법적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했다.